12월 2일.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여러모로 힘든 것 같다.
열흘 전에는 뒤어서 받히는 교통사고로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다 보니 계속 출근이 늦다. 늦잠으로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치가 보인다.
오늘도 늦게 출근하는 김에 화분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생각나는데 아보카도 물을 주고 출근했어야 했는데...
요즘 계속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다 보니 베란다 사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날씨뿐만 아니라 신경을 못쓰기에 더욱 심각하다.
오늘 아침 최저 영하 9도정도였으나 출근직전 영하 4도쯤 되는 것 같다. 베란다의 온도는 5도 정도.
지난가을 들여왔던 올리브부터 살폈다.
들여왔던 올리브는 레시노와 호지블랑카, 두 품종이다.
영하에서도 견딜 수 있는 품종이라고 알고 있어서 베란다에 두고 있는데 조금 문제가 있다. 두 올리브 모두 잎 끝이 갈변되어 있다. 처음 흙을 분갈이할 때부터 안 맞았던 것인지 전체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올리브 가지 끝에는 새 가지가 나온다. 아주 문제는 아니라는 것인가?
올리브 레시노 옆에는 하바네로가 살고 있다. 하바네로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고추다. 그러나 작년에 추운 베란다에서 겨울을 난 적이 있기 때문에 베란다에 두고 있다.
사실 거실에 둘 곳이 없다.
하바네로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을 것이다. 그러다 따뜻해지면 다시 새 잎이 나올 것이다.
올해 얻은 하바네로 고추 두봉지가 아직 냉동실에 있다. 매워서 먹기 힘들다. 이런 매운 고추는 가정에서는 한 그루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 옆에는 페퍼민트가 살고 있다. 흙이 말라있었는데 물을 주고 나온다는 것을 잊었다. 실내에 들여놓아야 하는 것이 맞을 듯한데 장소를 물색 중이다.
그 옆에 있는 것은 칼랑코에다.
칼랑코에는 제법 추위에 잘 견디는 것 같다. 다만 추운 곳에서 건조하게 지내다가 날이 조금 풀리면 흰가루병에 잘 걸리는 것 같다.
지금까지 몇 년을 키우면서 가지들만 길게 자랐지 꽃을 본 적이 없다.
토분 옆의 칼랑코에들도 길게 자란 가지들을 잘라 삽목해 놓은 것이다. 저것들은 목대를 길게 해서 키운 다음 나눔 할 예정이다.
세이지도 추운 베란다에서 잘 버티고 있다. 내년 초에는 분갈이가 필요할 듯싶다.
로즈마리는 약간의 흰가루병이 생겼다. 본가에서 잘라서 삽목했던 로즈마리들도 모두 실패하고 남은 로즈마리는 이거 하나. 불안불안하다. 내 성격에 뭔가를 아주 많이, 동시에 한다는 것은 힘들도 벅찬 일이다.
올해에는 정말 많은 일들, 사건사고, 해야 할 숙제들, 벌인 일들이 많았다. 발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해야 했고, 최근에는 차사고가 나서 매일 병원을 다니며, 눈이 아파 병원에 가보니 면역력이 떨어지고 피로가 쌓여 각막염까지 생겼다.
어쩌다 보니 악보를 그려야 했고, 베란다에 새로움을 더하고자 여러 가지 시도했던 실험들, 그리고 "그 녀석"까지...
그러다 보니 기동안 잘 키워왔던 로즈마리에 문제가 생겼고, 올리브도 보냈으며 베란다에 흰가루이까지 생겼다.
어쨌든 여러 일들이 많았던 한 해를 보낸다.
내 생각에 정말 가장 키우기 쉬운 것은 남천이다. 추위에도 강하고 별로 신경을 쓸 일이 없다. 필요할 때 물을 주면 되고 가끔 물을 주는 것을 잊어도 잘 버틴다.
우리집 남천은 상록수다. 길가에, 바깥에 심겨 있는 남천은 비바람을 맞고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단품이 들어 잎이 떨어지고 봄이 되면 새 잎이 나서 푸르게 되지만, 베란다에서는 영하의 날씨를 겪을 일이 없으니 그냥 푸르다. 단풍이 들어 잎이 떨어질 일이 없다.
한 때는 화분이 꽉 차는 것 같아 포기를 나누어 여러 화분을 만드려고 했으나 화분 수가 많아지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그냥 두었다. 사실 집에서 30cm가 넘는 화분을 분갈이한다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 화분에는 처음부터 심은 남천 네 그루와 알지 못하는 사이 씨앗이 떨어져 돋아난 남천들이 살고 있다. 저 상태로 몇 년이 지났기 때문에 아마도 화분 안에 뿌리가 가득 차 있을 텐데...
정말 한가해지면 분갈이를 시도해 볼까... 근데 언제?
파프리카는 씨앗부터 야심 차게 키워온 것인데 이건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한때는 거름도 때때로 주고 잘 관리하고 있었으나 몸이 조금 불편하고 날도 추워지고 하다 보니 완전히 방치상태다. 파프리카가 달린 채로 한 달 넘게 익지 않고 그래도 있다. 일부는 가지가 부러져 파프리카가 마른 채로 매달려 있는 것도 있다.
어쨌든 올해 파프리카를 키우면서 씨앗으로부터 키워도 파프리카는 달린다는 것과 커다란 화분이 아닌 PET병에서도 잘 자란다는 것, 잎응애와 같은 벌레가 잘 생긴다는 것, 역시 파프리카는 맛있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만약 파프리카를 다시 키우라고 한다면, 집에서 키우는 것은 한두 그루 정도는 좋다.
어쨌든 계속 물을 주고 겨울을 지나게 하겠지만 자연적으로 시드는 것들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이제 실내에 들어와 보자.
문제가 제일 심각한 바질들. 흰가루병이 심각해서 바질 화분 하나는 실외기에, 하나는 베란다에 두었었다. 그러다가 날이 추워지면서 모두 베란다에 두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 전 화분을 보다가 바질이 조금 시든 것 같아 흙을 확인해 보니 너무 말라 있어 수도 호스로 화분에 물을 가득 채웠다. 바질을 심은 화분은 자동 급수 화분이라 물을 채우면 된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급한 마음에 물을 담다 보니 물을 너무 많이 채웠다. 가뜩이나 물이 별로 필요 없는 동절기에 물이 넘치도록 차 있으니 뿌리가 성할 수 없다. 잎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분을 급수통에서 뺐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과습.
그래서 급히 화분을 건조한 실내로 들여놓았다. 결국 바질들은 죽어가고 있다.
베란다에 있던 바질도 마찬가지. 이것도 과습이다. 평소에 바질 잎을 많이 쓰는데 당장 바질이 없으니 문제다. 이 두 화분은 정리하고 내년을 위해서 다시 바질 씨를 뿌려야 할 것이다.
바질이 이렇게 된 것도 관심을 주지 못해 벌어진 일.
아보카도는 거의 성장이 멈춰있는 것 같다. 크게 변화가 없다. 분갈이가 필요한 건가. 분갈이도 조금은 걱정된다. 잘못하다가 또 보낼 수 있기 때문에.
1호는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한동안 깜빡하고 물을 주지 않았기에 잎이 너무 말라있다. 아래쪽 잎은 만지면 부스러진다. 하지만 위쪽의 싹은 살아 있다.
2호는 너무 비실거린다. 2호도 성장을 멈춘 상태.
우리 집에서 아보카도는 애물딱지다.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난 그래도 신기할 따름인데. 다만 "그 녀석"은 아보카도를 좋아한다. 떨어진 잎을 찢으며 갖고 놀다가 먹는다. 반려견은 아보카도 잎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커피 2호 화분에서 우연히 돋아난 싹이었던 알로카시아. 가을 동안에 TV 옆에 놓아두었는데 어두운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 난 잎의 크기가 매우 작다. 그래서 거실 창가 쪽으로 옮겨놓았다.
알로카시아는 실내에서 많이 키운다. 무론 밝은 실내는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알로카시아는 해바라기와 같이 빛을 매우 좋아하며 잎의 방향을 해가 비치는 쪽으로 튼다. 올 겨울만 버텨다오. 다시 베란다로 보내줄게...
커피나무는 물론 빛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반드시 겨울에는 실내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1호와 2호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1호는 전반적으로 잎이 크다. 하지만 2호는 작다. 이유는 정확하게는 모른다. 양분도 비슷하게 주고 물도 같이 주고 키우는 조건은 같다. 그렇다고 양분을 과하게 줄 수 없다. 과해도 문제가 생기니까.
올해에는 커피나무에 커피콩이 많이 열릴까? 집에서 키우는 커피나무이기에 한계는 있겠지만. 커피나무에서 열린 커피콩을 로스팅해서 커피맛을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깔라만시. 열대지역에서 자란다고 하기에 겨울에는 반드시 실내에 있어야 한다. 병도 안 걸리고 잘 자란다. 이것도 그냥 자라기만 한다. 얼마 전 가지치기를 했는데 벌써 새 가지들이 나온다.
처음에 우리 집에 올 때에는 키가 화분만 했는데 지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자란다. 그래서 가지를 잘라주지만 그래도 계속 위로 자란다. 이제 한 번쯤은 열매가 열릴 때도 되었는데.
집에서 깔라만시를 키우는 것은 비추천이다. 가지 사이사이에 매우 날카로운 가시들이 많다. 그래서 다룰 때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열대식물은 한국의 겨울을 나기에는 힘들다. 최근 들어서는 너무 추워 동사하기 쉽다. 그래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아파트는 확장된 베란다의 경우 밝은 창가에 둘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어두운 곳에서 몇 개월을 지내야 한다. 앞으로 두 달 정도만 버티면 베란다로 나갈 수 있다.
봄이 되면 화분에 웃거름도 주고 필요하면 분갈이도 해야 하고, 새로운 것을 키우려면 파종도 해야 하고... 바빠질 것 같다.
무엇보다 봄이 되면 화분들을 모두 베란다로 보낼 수 있다. 그러면 거실은 넓어지겠지. "그 녀석"이 좋아하겠지.